르네상스(Renaissance)는 프랑스어로 '재생'이라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는 14~16세기 그리스·로마의 고전문화가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고전문화에 다시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바사리(Giorgio Vasari)(1511~1547)였다.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바사리는 <예술가열전>에서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며 치마부에(Cimabue. 1240~1303),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6~1337)에서 시작되어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에 이르러 고대예술이 부활된 현상에 레나시타(Renascita) 즉, '재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근대에 르네상스는 단순히 고전예술의 부활이라는 차원을 넘어 시대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쥘 미슐레는 <프랑스사>에서 르네상스는 고전 시대의 문화 전체가 부활한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근대문화가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미슐레는 르네상스를 프랑스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였고, 그마저도 1494년 샤를 8세(Charles VIII. 재위 1483~1498)가 이탈리아를 공격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의 개념과 맞지 않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1818~1897)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르네상스를 이탈리아 중심으로 파악하였고, 14세기부터 시작된 고전·고대문화를 바탕으로 근대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를 독립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아 바로 이전의 중세와 단절되고 오히려 고대와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많은 비판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었다.
부르크하르트에 대한 많은 비판의 주류는 역시 이전 시대인 중세와의 연결·연속성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해스킨스는 <12세기의 르네상스>에서 소위 '중세 암흑론'을 반박하며 이미 12세기부터 르네상스 현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남아있는 중세적 요소에 주목하여 르네상스를 중세의 황혼으로 보기도 했다. 이러한 견해들은 르네상스에 있어 과거와의 연속성을 조명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르네상스가 갖는 근대적인 요소가 희석될 위험을 갖고 있었다. 월레스 퍼거슨은 <역사적 고찰에서의 르네상스>, <유럽의 전환>에서 중세와의 연속성과 근대적 성격 양자를 균형있게 조명하였다.
이처럼 중세와의 연속성을 조명하는 차원에서 부르크하르트에 많은 비판과 수정이 가해진 바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가 결국 고전·고대문화에 대한 재조명과 부흥이 이뤄졌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근대문화가 창조되었다는 본질적인 의미의 변화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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