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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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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TI 2023. 5. 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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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

  교회에 지배되던 중세에서 대표적인 학문은 교회의 학문, 즉 신학이었다. 철학은 신학에 봉사하는 시녀라고 이야기될 정도였다. 스콜라철학 또한 중세학문을 대표하는 신학적 철학체계이다. 스콜라는 주교성당이나 수도원 부속학교를 의미하며, 이를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스콜라철학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그 기원은 로마시대 교부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 신국론 등)의 사상이었다. 11~12세기 이슬람세계에서 들어온 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고대철학은 중세 유럽의 스콜라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였고, 이를 계기로 스콜라철학이 체계를 갖추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스콜라철학자들의 첫번째 과제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즉,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는 문제였다. 그에 대한 의미있는 답을 제기한 최초의 인물은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1034~1109)이다. 에리우게나(815~877)의 뒤를 이어 스콜라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셀무스는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왜 하느님은 인간이 되었는가?>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지적 노력으로 신앙을 심화시키고 불신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이성보다 신앙이 앞서며, 신의 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결론은 "신앙을 위하여 지성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하여 믿는다."였다.
  두번째 과제는 소위 '보편'(the universals)의 문제였다. 12세기 초에 대두된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서 보편적인 개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재론과 보편적인 것은 오직 이름뿐이며 실재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이 대립하여 양자 사이에 "보편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에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아벨라르(1079~1142)였다. 그는 <긍정과 부정> 등의 저서를 통해 실재론과 유명론을 접목한 '개념론'을 제시하였다.
  아벨라르 사후 롬바르두스는 <명제논집(전거의 서)>에서 더욱 많은 전거와 주해를 제시하였다. <명제논집>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신학대전>과 함께 신학강의 교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12세기 후반 유럽에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체계를 수용하면서 스콜라철학을 대성시켰다. <신학대전>를 통해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사상은 발표될 당시에는 여러 신학체계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17세기 들어 가톨릭교회의 공식 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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