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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배경과 정치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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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TI 2023. 5. 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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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배경

 르네상스 넓은 의미에서 중세세계의 봉괴를 의미했다. 14·15세기에는 전유럽 규모로 중세세계가 봉괴하고 있었다. 즉, 르네상스는 유럽 에서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트라르카(Petrarca. 1304~1374)보카치오(Boccaccio. 1313~1375) 같은 시기 영국에는 초오서(Chaucer. 1343~1400) 등장하여 중세영국문학을 집대성하고 새로운 문학이 등장할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는 일차적으로는 탈리아적인 현상이었고, 이탈리아에서 먼저 전개되었다.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퍼져나간 결과였다. 그 원인들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로마의 유산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의 본거지로서, 고대문화와 유적, 유물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풍부했. 따라서 이탈리아인에게 고전·고대문화의 부활은 게르만족에 의해 파괴된  전통을 회복하는 이었다. 14세기 중엽 아비뇽 유수(1309~1377)로 인해 로마가 황폐해졌을 , 엔찌(Rienzi. 1313~1354)가 고대로마적 공화정을 부활하려는 반란을 일으킨 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  도시의 발전

 탈리아에는 고대도시의 전통 또한 남아있었, 봉건제도는 아직 미약하였다. 뿐만 니라 십자군전쟁 이래 지중해무역이 재개되어 이탈리아 일대 도시들이 번영하고 부유한 시민층이 성장하였다. 황제권과 교황권이 갈등을 빚는 와중에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은 주변 농촌에 영향력을 확대했다. 도시는 확장되어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원거리 무역과 모직물공업이 발전하였다. 

 

(3)  시민사회 형성

 중세 말부터 도시에는 도시귀족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상층부르주아지와 재래의 지주귀족으로 구성되었다. 상층부르주아지는 주로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기존 귀족과 대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미약했던 봉건제와 농노제 13세기에 이미 붕괴되었다. 지주귀족과 부르주아지가 융화되면서 이탈리아에는 유럽에서 가장 빨리 시민적인 사회(civilsociety) 형성되었다. 이러한 시민사회는 르네상스가 등장하게 사회·경제적 기반이었.



#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

 유럽에서 도시와 시민계급의 성장은 정치지형의 변화로 이어졌다. 

 북유럽과 서유럽의 경우 왕권 강화와 함께 집권적인 일국가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지중해무역의 중심이  북부 이탈리아의 경우 독립적인 도시국가가 크고 작은 공국들과 공존하였다. 북부 시국가들은 상업과 무역의 패권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5세기에는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가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 중부 이탈리아에는 교황령 자리 잡았다. 남부 이탈리아에는 나폴리(시칠리아)왕국 있었다. 15세기 후반 나폴리국은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쟁탈 대상이 되어 있었다.

 르네상스기 리아 분열과 대립, 외세의 개입 등으로 매우 복잡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도시국가, 예를 들어 피렌체의 경우 도시의 정권을  대상인과 금융가에 대한 중소시민 내지 노동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밀라노에서는 용병대장이 정권을 장악하는  내부적인 갈등이 심하였고, 거기에 제당(기벨린) 교황당()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었다. 때문에 15세기에는 이러한 내분을 종식시키고 대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제군주 지배 하에 정치적 안정을 기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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