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학은 기사들의 모험과 우정, 사랑을 그린 문학작품들입니다. 전투를 수행하는 무인이자 종합교양인이었던 기사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기사들은 자질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사 작위를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 사회의 발전에 따라 결국 기사들은 지위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유명하고 의미있는 기사문학 작품들을 간략히 살펴보고, 기사의 몰락을 초래하는 다양한 배경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사문학(Knightly Romance)은 12세기 말부터 13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한 문학 장르 중 하나입니다. 기사문학은 중세 기사들의 모험과 로맨스를 다루었습니다. 기사문학은 대개 소설 형태로 쓰여졌으며, 가끔씩 초월적인 요소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기사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검이나 창으로 적의 갑옷을 갈라버린다거나 마법사, 요정, 드래곤, 골렘 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기사들의 모험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고, 수많은 독자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유명한 기사문학 작품들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입니다. 아더왕은 6세기경 켈트족 영웅으로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아더왕과 엑스칼리버, 랜슬롯, 갤러헤드, 트리스탄, 가웨인 경 등 그의 기사들의 모험과 기사도 정신, 성배 전설 등 다양한 전승이 결합되었습니다. 15세기 토머스 멜러리 <아더왕의 죽음>에서 아더왕 이야기와 전승을 집대성하였고,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 윌리엄 칵스턴이 출판하였습니다. 아더왕 이야기는 오랜 시간 전해내려오며 서양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둘째, <광란의 오를란도>입니다. 1532년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아리오소토가 발표했습니다. 앞서 발표된 보이아르도의 작품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작품 배경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 한창인 파리입니다. 오를란도는 샤를마뉴 대제의 기사입니다. 이슬람 미녀 안젤리카와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 낯선 세계로의 모험과 경이로움 등의 감정을 익살과 풍자를 섞어 표현하였습니다. 샤를마뉴의 명으로 감금되어 있던 안젤리카는 성에서 도망쳐서 이슬람 군사인 메도로와 결혼합니다. 오를란도는 실연의 충격으로 광폭해져서 무장을 하고 에스파냐를 헤매다가 친구 아스톨포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립니다. 아스톨포는 이포그리포와 함께 달나라로 가 헛된 꿈을 좇다 죽은 자들의 두뇌 가운데 오를란도의 것을 찾아 지구로 가져오고, 오를란도는 마침내 이성을 되찾게 됩니다.
셋째, <롤랑의 노래> 입니다. 부하의 배신으로 이슬람군에게 포위당한 샤를마뉴 대제를 구하고 자신은 전사한 기사 롤랑의 영웅적인 이야기입니다.
넷째, <니벨룽겐의 노래>입니다. 훈족의 침입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전승이 13세기 독일에서 집대성, 정리된 것입니다.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브룬힐트의 복수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요정여왕>(The Faerie Queene)입니다. 16세기말 에드먼드 스펜서가 지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모델로 한 요정여왕 글로리아가 주인공입니다. 여왕의 축제에 12가지 덕목(德目)을 대표하는 12명의 기사가 하루 한 사람씩 모험을 떠납니다. 한편 아서왕은 글로리아 여왕의 환영을 보고 여왕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데, 모험 도중에 12명의 기사를 도와 모험을 성공시킨다는 줄거리입니다.
이처럼 기사들의 모험과 사랑,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많은 판타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영감을 주었고, 그 자체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제작되었습니다. 비록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기사와 기사문학의 허구를 비판했지만 오늘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어벤저스>는 여러모로 매우 다른 영화입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중과부적의 대군을 상대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고 열광합니다. ‘세계의 평화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영웅들’의 시조는 아더왕, 지크프리트, 롤랑이 아닐까요?
기사 작위는 수여될 수도 있지만 빼앗길 수도 있었습니다. 심각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한 기사는 작위를 박탈당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의 명예, 지위, 생계를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작위 박탈은 매우 무거운 형벌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왕이 기사 작위 박탈 권한을 가졌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작위를 수여한 영주의 책임이었습니다. 두 국가 모두 기사 작위 박탈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지만, 왕이나 영주의 권력을 드러내는 중요한 권한이었습니다.
기사들은 군사, 예절, 교양 교육을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군사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품성에 대한 교육과 절제가 부족한 경우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중세 시기 내내 하층민에 폭력을 휘두르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상대 기사의 명예와 부를 강탈하기 위해 결투를 빙자한 폭행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는 하층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경멸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기사들이 몰락하게 된 원인을 4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사들의 역할이 변하였습니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주된 역할은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토지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부유해진 기사들은 귀족적인 성향이 강화되어 전투요원로서의 역할이 축소되었습니다. 이제 기사들은 ‘무장한 평화수호자’가 되어 도시와 성의 관문을 지키고, 관청이나 감옥에서 죄수를 감시하거나, 세금징수원이 되어 법률을 집행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십자군 전쟁과 백년전쟁 등입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기사들의 이미지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기사들은 신성하고 경건한 기독교 윤리와 도덕을 요구받았습니다. 하지만 전쟁 와중에 기사들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인,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고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비용 문제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라틴제국을 세워버린 4차 십자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기사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셋째, 총기 등 무기의 발전입니다. 중세 초기 활과 창을 튕겨내며 돌격하는 기사들은 전장에서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영국 장궁, 프랑스 석궁 등 강력한 활이 개발되어 종종 갑옷이 화살에 뚫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총기, 대포 등 화기가 제작되면서 전장에서 기사들의 역할은 더욱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넷째, 기사 양성에 큰 비용이 소모되었습니다. 중세 국왕, 귀족, 영주들은 기사를 양성하고 거느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인하여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농업생산도 급락하였습니다. 기사 양성이 재정적인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더해 15세기 이후 지리상의 발견으로 유럽에서는 상업화와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이에 기반한 상인, 자본가 계층이 급성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귀족들의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기사들을 양성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중앙집권 강화입니다. 귀족 세력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른바 “절대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왕은 상비군과 관료제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사와 주군 사이의 호혜적인 관계, 상호 의무 이행 관계는 약화되었습니다. 대신 기사들은 군대에서 지휘관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는 중세 봉건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뤄낸 개인적인 성취로서 존경받는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들의 군사적인 능력, 경제력, 풍부한 교양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등을 통해 기사들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사회, 경제적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사 계급의 쇠퇴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절대주의 시대에 기사들은 귀족이 아니라 군대 지휘관, 관료 등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사 작위는 일부 국가에서 명예적인 호칭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와 기사문학의 유산은 오늘날 특히 기사도와 명예, 약자 보호 의식,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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