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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기사 이야기

역사

by FITI 2023. 3. 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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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 들어가며
  • 기사의 성장과 교육
  • 기사 서임식
  • 마상시합(토너먼트
  • 결론

 

 

들어가며

   중세 유럽 기사들은 전문적인 전투요원이자 기사도, 용맹함, 그리고 명예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봉건 사회에서 존경 받는 구성원들이었고 전쟁, 외교, 그리고 궁정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사의 의미, 기사수업, 기사 서임식, 그리고 기사문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마상시합(토너먼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기사의 의미

 

   기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국왕·공작·백작과 같은 대귀족이 아닌 지방의 소영주에게 기사 칭호가 붙는 경우입니다. 11세기부터 이러한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대귀족이든 소영주이이든 상관없이 순전히 개인적 자격으로 기사라고 불리게 된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 "기사"라 함은 완성된 무인(武人)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명예와 고귀함의 관념이 강하게 결합되었습니다.

 

 

2. 기사수업

   기사 후보생들에게는 일정한 수업 기간이 요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위 영주나 기사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주군의 부인 시중을 들고 심부름을 하면서 귀족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성장하면서 본격적인 교육,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훈련은 군사 교육, 예절 교육, 교양 교육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군사 교육은 주로 기마술, 무기술 등을 배웠습니다. 무기는 주로 양손검, 창, 활 등을 사용했습니다. 기마술은 기사들이 전장에서 빠르고 신속한 이동, 공격을 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주를 수행하며 전장에 나가 실전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둘째, 예절 교육은 기사가 권위와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예절을 의미하는 courtesy는 궁전(court)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즉, 예절이란 궁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궁정예절은 기사 및 귀족들의 의식적인 목표가 되었고, 범위 또한 확장되었습니다. 여기에 명예, 약자, 여성 보호, 도덕적, 사회적 책임 등이 더해졌습니다.

  셋째, 교양 교육은 다양한 분야로 이뤄졌습니다. 춤, 노래, 독서, 작문 등의 교양을 갖출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기사의 교육은 육체적, 지적 훈련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기사수행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발전을 포함했습니다. 기사들은 독실한 크리스트교인들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고 교회규범 또한 지켜야 했습니다.

 

"귀족은 태어나면서 당연히 귀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사는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기사가 될 수 없다."

 

 

3. 기사 서임식

  기사서임식은 중세 유럽에서 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식적인 행사였습니다. 기사 서임식의 기원은 고대 게르만족의 성년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분명하진 않습니다.

  서임식에 앞서 기사 후보자는 먼저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야 했습니다. 서임식을 앞두고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신에게 기도를 바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격적인 서임식에서 후보자는 기사가 되기 위한 조건과 의무에 대해 노력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기사의 신분을 나타내는 비단 띠와 검을 받았습니다. 주군은 기사 후보자의 어깨를 칼등으로 세 번 치면서 "그대는 기사로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기본적인 절차였습니다. 여기에 기사도 선언서와 훈계, 무구 및 마구 착용 의식 등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서임식은 종교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기사 또는 기사도의 수호성자인 성 조지의 이름이 인용되었습니다. 이후 서임식은 점차 신비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기사가 되고 나면 그들은 도시의 군대에 참여하거나 국왕의 군대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사들은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기사서임식은 기사 신분을 인정받는 의식일 뿐만 아니라, 기사의 의무를 부담하고 귀족사회에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사 서임식의 전통은 귀족의 문화와 유럽의 중세시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4. 마상시합(토너먼트)

  기사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전투 집단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개인적인 무술 연습 및 군사 훈련을 했고,  이따금씩 마상시합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사 윌리엄>과 같이 많은 영화에서 1대1 마상시합인 토너먼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1대1 토너먼트 방식 진행이 자리잡은 것은 12세기 후반이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마상시합은 참가자 수 제한도 없는 패싸움에 가까웠습니다. 말을 타고 달려들어 상대방을 낙마시키는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규칙도 없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토너먼트는 그들의 기술을 보여주고 부와 명성을 얻는 기회였습니다. 때문에 기사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습니다. 다만 온 몸을 감싸는 갑옷(풀플레이트 메일)이 80~100kg나 될 정도로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때때로 기사를 말에 태우기 위해 기중기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나무로 된 창을 썼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부상을 입을 염려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에서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훨씬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낙마하지 않기 위해 안장에 몸을 단단히 고정시켜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기사들은 군사훈련과 마상시합을 통해 군사적 역량을 강화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무장 기병으로 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결론

  중세 유럽에서 기사는 아주 중요한 계층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뤄낸 개인적인 성취로서 기사는 존경받는 구성원이었습니다. 기사서임식은 종교적 색채를 넘어 신비주의 성향이 더해졌습니다. 마상시합은 대표적인 기사문화 중 하나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군사적 능력, 경제력, 교양은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널리 알려진 기사문학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기사문학에 대해 알아보는 한편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에 따라 발생한 기사의 지위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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